Into Novus

변화와 혁신이란 말처럼 함부로 남용되는 되는 말도 드물 것이다.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도 기업에서도 심지어는 개개인도 변화와 혁신을 외친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고 혁신이 없으면 발전도 없을 것 같다.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는 맹목적인 변화의 몸부림이 비일비재한 세상이다. 그로 인해 변화의 이유도 모르고, 동반된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에 대한 판단도 없이 변화와 혁신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외통수에 걸려든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변하기는 변해야 한다. 그런데 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는 적어도 알고 변해야 하지 않을까?

50년대 반도체 산업의 태동기를 거치며 명실상부하게 세계적인 기술 집약 산업의 집산지가 된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는 파괴적인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전형을 보여준다. 어떤 산업이든 대체로 수요자와 공급자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안정적인 모습을 찾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안정적인 시장에서는 내노라하는 기업들이 시장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무게 중심을 잡는다. 그리고 새로운 참여자가 들어올 틈을 쉽사리 주지 않는다. 이런 시장에서 수년간 시장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고 선도적인 기업은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여 자본을 축적하며 영향력을 확대한다. 적어도 파괴적인 혁신가들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들고 들어올 때까지는 말이다. 파괴적인 혁신가들은 자신들이 주창하는 새로운 가치를 적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낸다. 어느 순간엔가 기존 시장을 뿌리 속까지 완전히 솎아 내고 기존에 통용되던 방식을 구식으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전보나 우편물이 문자와 이메일로 바뀌었고 컴퓨터 앞에서 소비하던 많은 정보와 미디어가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 기기로 급속히 옮겨가는 추세도 파괴적인 혁신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혁신을 뜻하는 영어 단어 innovation의 라틴어 어원을 살펴보면 into (속으로) + novus (새 것)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종종 혁신과 동일 시 되게 사용되는 발명(invention)이란 말은 새로운 방식이나 아이디어의 착안 자체를 의미한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저명한 석학인 얀 파겔버그(Jan Fagerberg) 교수에 따르면 “혁신은 새로운 방식과 아이디어를 통해 시장이나 사회에서 널리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더 나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일련의 행위들”을(practice) 말한다. 따라서 뛰어난 발명가들이 내놓은 새로운 제품이나 방식이 세상에 널리 통용되지 못하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발명을 위한 발명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소수의 발명가에게 지적인 만족감을 줄지언정 아무런 소득이 없는 발명품은 결국 폐기처분 되고 만다.

아이디어는 넘쳐 난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사회적인 혹은 경제적인 가치를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희소성이 높다. 발명이 통상적으로 하나의 제품이나 착안에 국한된 반면 “혁신은 여러 아이디어와 새로운 제품을 복합적으로 조합하여 사회적인 필요에 부응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USC 혁신 연구소장 크리스티나 홀리(Krisztina Holly)는 말한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네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들이 산재해 있더라도 그것의 가치를 꿰뚫는 연결자(connector)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없다면 사회적인 가치도, 경제적인 실리도 없는 법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획기적인 신약 물질이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약의 효능과 기존 치료법과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대한 연구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꿰뚫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이 없다면 결코 블록버스터 신약은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변화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변화에 수반되는 불편함이 있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리고 반드시 변화를 통해 더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는 불확실성 자체가 싫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변화가 소리 소문 없이 우리의 삶 속에 찾아와 자신도 모르게 그 변화가 가져다 준 새로운 가치와 편리함에 매료되어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가치 사슬에 우리도 맞물려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맹목적인 혁신은 자연 도태되기 십상이다. 깃발을 들고 앞장서는 리더들이 혁신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길 기대하지만 실상은 우리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변화를 통해, 즉, 그 전보다 더 온전하고 풍성한(wholesome)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예리한 감각을 통해, 어느 순간엔가 우리 모두 변화와 혁신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NOBLE AMBITION

(written for Ducksoo Quarterly Withus in June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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